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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글쓴이 : 나난희
작성일 : 15-06-04 14:47
조회 : 327
책모임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칼의 노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더 많이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주 우리가 읽은 책은 '앵무새 죽이기'다.
나는 이 책을 20대 초반에 읽었었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부 지역에서 죄없는 흑인을 변호해 주는 백인 변호사 이야기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1부에서는 과연 20대 초반에 내가 읽은 책이 '앵무새 죽이기'였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분명 제목이 하도 독특하여 헷갈리지는 않을텐데, 1부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것이다.

이 책은 이제 다시 읽는 책이 아닌 처음 읽는 책이 되버렸다.

화자는 학교에 곧 들어가는 '스카웃'이라 불리는 여자 아이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오빠와 변호사 일을 하는 아빠, 집안 일을 돌봐주는 흑인 아주머니가 있다.
지역은 미국 남부,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극심한 경제공황에 시달리는 시기다.
 
1부에서는 아빠의 양육철학이 빛을 발한다.
엄마여서인지 무슨 책을 읽어도 양육자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혼자 된 아빠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사람들을 대하는 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스카웃과 타협하는 모습이라던가 부 래들리씨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때론 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빠는 그 어떤 사람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아빠의 이런 믿음은 아무 죄도 없는 흑인을 오직 흑인이라는 이유로 만장일치로 유죄로  판결하는 순간에도, 이웰씨가 침을 밷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이 세상 사람들의 불합리한 태도에 분개할 때도 긍정성을 일깨운다.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위협하는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는 사람들은 다수이다. 대신 협박 당하는 변호사를 지키는 3명의 이웃들, 재판에 졌을 때 스카웃 가족을 위해 달콤한 케익을 구워주는  모디아줌마,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이웃집 아저씨 부 래들리는 소수이다.

아빠는 말한다.
"수백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라고.

이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 문장이 나를 패배주의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나에게 다시 '우리 나라에 대한 희망'을 '세상에 대한 긍정'을 의무가 아니라 믿음으로 갖게 할 수 있을까?